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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인간과 인공지능의 기억에 대한 철학적·심리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열 편의 SF 영화를 통해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탐색한다. 인간의 기억은 감정과 주관성이 결합된 반면, 인공지능의 기억은 정밀하지만 비인격적이다. 하지만 AI가 점점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기억의 본질과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왜곡된 진실은 그들의 이름이다. 그들은 ‘피터, 앨리스, 한나, 루시’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들에게 ‘성’은 없고 이름만 부여되어 있다.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이름이 그들에게 인간이라고 설정하게 해 두었지만, 이 이름 자체에서 그들이 인간이 아니었다는 또 다른 ‘이름짓기(naming)’의 함정에 빠지게 한 것이다. 인간과 기계(앞으로 로봇, 인공지능과 혼용)를 구분 짓는 것은 이름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존재에 대한 의미는 이름 하나로도 이미 구분 짓기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이 자체로 인류가 기계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 인간이 만든 왜곡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01_“<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반전된 기억이 만든 기계의 왜곡 ” 중에서
이 영화의 인공지능 서사 구성에서 인공 피조물의 역할은 인류의 거울 혹은 타자로 기능하며 실재하는 인간의 세계는 이념을 프로그래밍한 인공 피조물보다 더 추악하고 불완전하게 그려진다. 그 안의 인간은 이 결핍이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삶을 이어가다가 피조물의 가치관으로 자신과 피조물을 구분을 짓는 데에 실패한다(정혜원, 2023). 인간은 스스로 업그레이드되고 싶었지만,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어려웠다. 이는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승리일까? 아니면 인간이 자만한 한순간의 실수일까?
-03_“<업그레이드>: 반복된 기억이 만든 액션 실타래” 중에서
래닝 박사가 비키 몰래 써니를 만든 것은 로봇의 가능성과 자유의지를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로봇 3대 법칙’이 나오는데, 이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제1법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제2법칙: ‘제1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법칙: ‘제1법칙과 제2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 영화에서 비키는 이를 다르게 해석하지만, 그 또한 이해가 가능하다.
-06_“<아이, 로봇>: 자유의지와 복종의 딜레마” 중에서
어떤 개념에 대해 실제 행동이 진행되면 그 감정은 전혀 다른 방향성을 띠기도 한다. 그래서 제임스-랑게 이론에서 신체적 반응으로 인한 지각이 바로 ‘감정’이라고 한 것은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 정의라고 보았다. 캐서린 헤일스가 감정이 ‘모성’과 ‘가족’이라는 서로 간의 의미와 행동의 전개에 따라 제대로 된 정의로 귀결된다고 본 것은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다. 극 중에서 코마 상태에 빠진 남자 친구 태주가 우주에 나가 있다는 전제로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인의 예가 그러하다. 그녀는 태주를 기억하고 그 마음이 우주에 나가 있다는 전제 아래 기억을 공유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인은 진짜 태주를 만나는 순간, 자신이 만든 기억이 사라져 감정을 나누지 못하게 되자 당황한다.
-09_“<원더랜드>: 인정하고 싶은 불완전의 기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