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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규칙과 효율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에게 남는 것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답을 고전에서 찾아 오늘의 언어로 제시하며, AI 윤리를 기술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다시 묻는다. 군자(君子)라는 동양적 인간상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자기 수양과 관계 윤리를 새롭게 해석한다.
경은 고요할 때와 움직일 때 모두를 관통한다. 고요할 때의 경은 함양(涵養)이다. 마음을 고요히 기르면서 본래의 선한 본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공부다. 디지털 환경에서 함양은, 끊임없는 알림과 자극의 흐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움직일 때의 경은 성찰(省察)이다. 자신의 행위와 판단을 되돌아보면서, 기질적 편향이 의(義)를 가리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공부다. AI와 상호작용한 뒤에 “이 결정이 정말 나의 판단이었는가, 아니면 AI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는가”를 묻는 것이 디지털 환경에서의 성찰이다. 퇴계가 서문에서 언급한 경의 핵심,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늘 깨어 있는 자각을 유지하는 것’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단한 자기 점검이다.
-01_“AI 시대의 두 인간상” 중에서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물리적으로는 홀로 있지만, 정보적으로는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가 ‘멈추기’에 더 많은 의지력을 써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속이 기본값이고 중단이 예외인 환경이다. 몸은 홀로 있되 마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알고리즘은 ‘다음에 볼 것’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사용자는 자기가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선택지 자체가 이미 큐레이션돼 있다. 주의가 자기 내면에서 발원한 것인지, 알고리즘이 유도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여기에 신독의 현대적 긴장이 있다. 전통적 신독이 내면의 동요만을 경계했다면, 디지털 환경은 외부 감시의 부재에 더해 수백 개의 앱과 알림이 마음을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외부적 힘이 겹친다. 감시의 부재와 주의의 탈취(attention capture)가 겹치는 이중 조건에서, 신독은 더 어려워지는 동시에 더 절실해진다.
-03_“신독과 디지털 마음챙김” 중에서
인간-AI 관계를 오륜의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기존 연구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왔다. 가장 흔한 유비는 군신관계다. AI를 인간의 명령에 따르는 존재로 보면, 임금(사용자)과 신하(AI)의 관계가 연상된다. 그러나 군신유의의 핵심은 쌍방적 ‘의(義)’에 있다. 신하는 임금에게 간언(諫言)할 수 있고, 임금이 도리에 어긋나면 떠날 수도 있다. AI에게는 이런 자율적 도덕적 판단이 없다.
-06_“AI와 오륜의 재정의” 중에서
이 실증적 복잡성은 공자의 화(和)/동(同) 구분을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교하게 만든다. 에코챔버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화(和)의 상태에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양한 뉴스원에 노출된다는 것이 곧 다양한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요리를 먹는다고 해서 각 요리의 맛을 진정으로 음미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화(和)는 단순히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는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사유 안에서 통합하는 상태다.
-09_“에코챔버와 화이부동”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