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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의 판단과 책임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유가 철학으로 분석한다. 기술을 도구가 아닌 ‘형식’으로 바라보며, 도덕 질서가 성립하는 조건을 다시 묻는다. AI 시대 인간의 책임을 재사유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규제나 통제의 문제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요청된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기술을 관리해야 할 외부 대상으로만 설정할 경우, 기술이 이미 인간의 판단과 실천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쉽게 은폐된다. AI 시대의 기술 문제는 사용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을 넘어,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이 어떠한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로 다시 정식화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여전히 판단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결정이 실제로 숙고와 수정, 책임의 환류를 포함하는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01_“기술과 유가 철학” 중에서
AI는 선택지의 배열과 평가 기준의 설정, 예측과 분류, 추천과 배제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선행적으로 조성하는 시스템적 기물이다. AI를 둘러싼 철학적 문제는 기술의 정확도나 효율성만이 아니라, 그것이 판단과 책임의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재배치하는가에 있다. 그러므로 AI가 도덕 질서 속에 들어온다는 말은 “AI를 선하게 써야 한다”라는 도덕적 권고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은 AI가 도덕과 결합하는 방식이 도기합일의 형태인가, 아니면 도기분리(道器分離)의 새로운 형태인가를 가르는 것이다. 어떤 시스템이 표면적으로는 공정, 안전, 배려를 말하더라도, 실제로는 사용자의 숙고를 제거하고 책임의 경로를 지워 버린다면 그것은 도덕을 외피로 삼는 기술에 가깝다.
-03_“도기합일(道器合一)” 중에서
이러한 맥락에서 대동사회가 요청하는 것은 기술의 중단이나 배제가 아니다. AI는 공공 판단이 요청되고 숙고되며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경로를 명료화하는 형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판단의 잔여가 남아 있고, 책임의 귀속이 추적 가능하며, 관계적 배려가 제도적으로 반복될 수 있을 때에만 기술은 대동사회의 조건을 지지할 수 있다. 대동사회적 공공질서는 ‘도덕이 작동할 수 있는 형식의 지속을 의미한다. 대동사회는 AI 시대의 기술 비판을 위한 추상적 이상이 아니다. 대동사회는 기술이 인간의 판단을 끝까지 요청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공 기술의 배치를 성찰하기 위한 규범적 준거로 다시 호출되어야 한다. 이 기준은 어떤 기술의 발전이 공공성을 약화하고 어떤 발전이 그것을 지지하는지를 분별하기 위한 것이다.
-06_“기술적 대동사회(大同社會)” 중에서
화이부동을 AI 가치 정렬의 원리로 읽는다는 것은 기술을 도덕적 교사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다. 기술이 판단을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라,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보존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핵심은 기술이 결론을 산출하는 장치인가, 아니면 판단의 과정을 매개하는 장치인가라는 구분이다. AI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자동화한다. 이러한 자동화는 효율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판단의 공간을 축소한다. 선택은 존재하지만, 그 선택의 범위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자동화의 핵심 효과는 인간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판단하는 방식을 미리 형성하는 데 있다.
-09_“AI 정렬과 화이부동(和而不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