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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형주의와 프롬프트 시대 예술 기준

발행일
2026/06/26
저자
문수진
쪽수
163쪽
차례
AI가 그린 신조형주의가 우리에게 묻는 것 01 저자성의 자리 02 사진, 미디어아트가 받아들여진 길 03 신조형주의가 다시 호명되는 이유 04 검은 상자 속의 화가 05 프롬프트와 학습 데이터 06 아름다움의 두 잣대 07 측정의 결과, 그리고 그 너머 08 벨라미 이후의 경매장과 법정 09 김정기의 그림자, 엘닥슨의 거절 10 새로운 감상자
정가
12000원
ISBN
9791143029270
분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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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 법과 시장, 그리고 제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미학자 먼로 비어즐리와 노엘 캐롤의 이론을 바탕으로 생성형 AI의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저작권과 창작 윤리, 학습 데이터의 활용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살펴본다. 시장·법·미술관의 변화를 함께 읽으며 프롬프트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예술로 인정하고 가치 부여하는가를 성찰하게 한다.
AI 이미지의 저자를 묻는 일은 한 사람을 지목하는 일이 아니다. 학습 데이터를 만든 익명의 창작자, 모델 개발자, 플랫폼, 프롬프트 입력자, 결과 선별자, 감상자에 이르기까지 분산된 관계망이 한 점의 이미지에 얽혀 있다. 이 분산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미술사 안에서 같은 일이 이미 반복되어 왔었다. AI 이미지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놀라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탄과 불편함, 호기심과 의심, 기대와 거부감이 동시에 뒤섞인 복합적인 감각이다. 이미지 자체는 충분히 정교하고, 때로는 인간이 만든 어떤 작품보다도 화려하다. 그런데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이게 정말 예술인가라는 물음이 마지막에 남는다. 그 물음은 이미지의 품질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를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해 온 어떤 조건에 대한 흔들림이다. AI가 만든 이미지 앞에서 우리가 흔들리는 자리는 어디인가. 흔들림의 정체는 기술에 대한 무지가 아니다. -01_“저자성의 자리” 중에서 그러나 신조형주의처럼 규칙 중심의 양식은 그 거부감이 약하다. 어쩌면 알고리즘과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 그 기대 자체가 흥미로운 신호다.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규칙 중심의 예술과 감정 중심의 예술을 다르게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장이 묻고 싶은 것은 신조형주의가 왜 AI 시대에 다시 등장하는가. 그것은 이 사조가 가진 어떤 성질이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과 닿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이 이 정도라면 AI가 따라올 수 있겠지라고 무의식적으로 골라낸 결과인가. 그리고 이 두 답이 모두 부분적으로 맞다면, 우리가 신조형주의에서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03_“신조형주의가 다시 호명되는 이유” 중에서 비어즐리의 작업은 한 줄로 정리된다. 미적 감정은 측정될 수 없다는 통념을 일정한 한도 안에서 깨뜨리려는 시도. 그는 미적 감정을 다른 감정과 구분 짓는 객관적 기준이 있다고 보았고, 그 기준을 통일성·강도·복합성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AI 신조형주의 이미지의 평가를 위한 첫 번째 잣대로 쓰였다. AI 이미지의 미적 가치를 측정하려고 한다는 말 자체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린다. AI는 감정이 없고, 측정은 감정의 가장 안쪽까지 닿지 못하리라는 직관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측정이 감정의 전부를 다루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들여다보겠다는 시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어즐리의 세 가지 잣대는 후자의 자리에 서 있다. 이 장이 묻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비어즐리의 세 가지 잣대는 AI 이미지에 적용될 때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가리는가. 그리고 그 잣대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좋은 작품이라고 부를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기준의 어느 부분을 비추는가. -06_“아름다움의 두 잣대” 중에서 법적으로 화풍 그 자체는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저작권은 표현을 보호하지만, 아이디어나 양식을 보호하지 않는다. 인상주의자가 인상주의자의 화풍을 가지는 것은 그 양식의 한 사례를 만드는 일이지, 인상주의 자체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같은 논리로, AI가 김정기 스타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한 가지 미묘한 자리가 있다. 화풍은 보호되지 않지만, 그 화풍을 김정기라는 고유명과 연결해 호출하는 행위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은 그 자체로 인격권의 자리에 있고, 사후의 인격권은 한국 민법과 저작권법의 일부 조항에 의해 보호된다. AI가 김정기 스타일이라는 키워드로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은, 결국 작가의 이름과 그의 작업의 결과를 연결시키는 행위다. -09_“김정기의 그림자, 엘닥슨의 거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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