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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에 상상력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AI는 데이터의 조합으로 그럴듯한 이미지를 산출하지만, 인간은 기억, 감각, 신체, 윤리, 공동체의 시간을 엮어 세계를 본다. 기술 원리, 미술사, 인지과학, 동시대 작가 사례를 가로지르며 미술이 이미지 생산을 넘어 ‘보는 방식’을 발명하는 활동임을 밝힌다.
이 변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생성형 AI는 더 이상 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에만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아니다. 영상, 애니메이션, 광고, 게임 시네마틱까지 시각 매체 전반이 영향권에 들어왔다. 둘째, 변화의 속도가 미술 제도가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으로 빨라졌다. 한 미술관이 1년 전 기획한 ‘AI 미술’ 전시가 개막 시점에 이미 구식 기술 위에 놓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속도 차이가 동시대 미술 환경의 새로운 기본 조건이 됐다. 이 새로운 조건 안에서 작가, 관객, 비평가, 컬렉터, 큐레이터, 법조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01_“생성형 AI와 미술 환경의 변화” 중에서
이 다섯 층위 가운데 인간과 AI를 가르는 결정적 지점은 네 가지로 다시 정리된다. 첫째는 신체성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신체적 조건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한다. 손목의 피로, 종이의 결, 작업에 흐르는 시간이 표상의 내용에 깊이 개입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물음은 ‘이 신체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리적 한계와 맞물린다. 반면 생성형 AI는 신체성을 결여한다. 그 출력 과정은 육체의 피로나 물질의 저항을 변수로 삼지 않는다. 이 결여는 결함이 아니라 두 작동의 이질성을 보여 주는 증거다.
-03_“인간의 상상력과 AI의 상상력” 중에서
공감적 상상력이 인지의 차원에서 타인의 자리에 서는 능력이라면, 윤리적 판단은 그 자리에 선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활동이다. 미술 작업에서 윤리적 판단은 작품이 완성된 뒤에 외부에서 부과되는 평가가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녹아 있는 활동이다. 어떤 장면을 다룰지 말지, 다룬다면 어떤 거리에서 다룰지, 누구의 시선에서 다룰지, 누구의 목소리를 누락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매 순간이 윤리적 판단의 순간이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에서 폭력의 이미지를 보는 일이 가지는 윤리적 무게를 짚었다. 한 장의 사진이 폭력의 피해자를 어떤 거리에서,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맥락에서 보여 주는가는 그 이미지가 관객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미술의 윤리적 판단은 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관한 책임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드는 이미지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닿을지를 예측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예측이 작품의 형식적 선택−구도, 색, 매체, 전시 방식−에 깊이 개입한다.
-06_“공감과 윤리의 미술적 상상력” 중에서
이 관점에서 보면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흔한 질문은 협업의 시선에서 사태의 중심을 비껴간다. 정작 던져야 할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인간 작가는 생성형 AI의 산출 방식을 자신의 통합적 상상력 안으로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둘째, 그 포섭이 알고리즘의 이면 그 자체−학습 데이터의 출처, 노동의 분배, 분포의 편향−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앞의 물음이 작가의 미적 결정에 닿아 있다면, 뒤의 물음은 작가의 윤리적 결정에 관여한다. 두 결정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작업 안에서 동시에 관철될 때, 협업은 비로소 그 이름에 값한다.
-09_“인간과 AI 협업적 상상력”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