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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와 인간 사유의 관계를 정체성의 문제로 읽는다. 프롬프트에 사용자의 관점, 선택, 가치 판단이 어떻게 담기는지 살피며, 후설의 현상학을 바탕으로 AI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도가 어디서 굴절되는지 묻는 태도를 제안한다. 정체성은 AI를 쓰는 방식 속에서 드러나고 다시 구성된다.
사유의 단락은 사용자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사용자는 인공지능 앞에서 질문을 입력하고 내용을 수정하며 결과물을 선택한다. 다만 질문이 사건의 원인, 인물의 내면, 경험의 본질적인 의미 등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사유의 단락이 일어난다. 질문의 양은 늘어날지언정 사유의 깊이는 얕아지며, 결과물은 계속 교체되지만 사용자의 본래 의도는 오히려 흐려진다. 인공지능 시대의 질문은 결과물 앞에서 사유를 멈추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결된다. 사용자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에 쉽게 만족하며 질문을 멈출 수도 있고,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다고 느끼며 질문을 이어갈 수도 있다. 즉, 결과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유는 멈추기도 하고 다시 움직이기도 한다. 사용자가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할 때 다음 질문의 실마리를 찾으며, 짧아진 질문은 깊은 사유로 나아가는 질문으로 전환해 나갈 수 있다.
-01_“사유의 단락” 중에서
메타노에틱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인공지능의 제안을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빠르고 그럴듯하게 생성될수록 혼동은 쉽게 일어난다. 프롬프트를 다듬고 결과를 조정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어디까지가 자신의 의도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공지능의 제안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방향을 자신의 생각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메타노에틱 성찰은 이러한 혼동 속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03_“메타노에틱 성찰” 중에서
이처럼 사용자의 해석이 담긴 문장은 의미의 방향을 드러낸다. 장면의 설계가 무엇을 보이게 할 것인가를 정하고, 관계와 동기의 배치가 장면이 왜 움직이는가를 묻는다면, 해석이 담긴 문장은 사용자가 장면을 왜 그렇게 읽어 냈는지를 말해 준다. 프롬프트는 인공지능에게 장면을 요청하는 문장이면서, 사용자의 의도와 방향성을 보여 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장면의 요소만 나열해도 이미지는 생성되고 이야기는 이어진다. 결과도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요소의 나열에만 집중한다면 생성의 방향은 사용자의 판단보다 인공지능의 익숙한 조합에 가까워진다. 프롬프트를 설계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해석과 의미 부여 방식을 점검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프롬프트를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용자는 생성 과정에서 사고의 흐름을 스스로 확인하고 장면의 의미를 정하며 정체성의 방향을 자신만의 언어로 조정한다.
-06_“프롬프트 설계” 중에서
사용자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결과가 향하는 의미를 자신의 기준으로 조정했다. 인공지능은 문장을 만들 수도 있고 장면을 배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떤 기억으로 남고 어떤 관계를 드러내며 어떤 감정의 방향을 갖게 될지는 사용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주체성 회복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를 판단하고, 자기 언어로 수정한 후 의미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09_“주체성 회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