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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량 예측과 전력망 최적화에 기여하는 AI가 동시에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는 모순을 추적한다. 데이터센터 입지,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 배분과 지역 이익 공유가 그 결과를 결정한다. 에너지 섬이자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딜레마를 짚으며, AI를 에너지 전환의 순(純) 가속자로 만들 정책 조건을 묻는다.
역설이 있다. AI를 돌리려면 전기가 더 필요하다. 전기를 만들려면 발전소가 더 필요하다. 그 발전소가 화석연료라면? AI는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늦춘다. 이 역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ChatGPT 출시 이후 3년, 그 서버가 소비하는 전기의 양은 수십 배로 늘었다. 처음에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이제는 에너지 정책의 한복판에 서 있다. AI를 돌리는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는 얼마나 나오는가. 그리고 AI가 절약해 주는 에너지와 AI가 소비하는 에너지, 어느 쪽이 더 큰가.
-01_“AI는 공짜가 아니다” 중에서
기존 전력망은 철탑과 전선과 변압기로 이루어진 수동적인 구조물이었다. 전기가 흐르는 도로였다. 스마트그리드는 이 도로를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DLR가 기존 전선의 숨겨진 용량을 깨우고, VPP가 흩어진 배터리를 하나의 발전소로 묶으며, P2H가 남는 전기를 열로 바꿔 다른 부문으로 흘린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AI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반 위에 제3차 지능형 전력망 기본 계획과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상이 서 있다. 기술은 준비됐는데, 규칙이 잠가 놓았다. 수백만 개의 분산 자원이 AI로 연결되는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이 작동할 시장 규칙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다.
-03_“스마트그리드, 똑똑한 전력망의 꿈” 중에서
이 장은 나이지리아와 아일랜드로 시작했다. 신안의 섬과 수도권의 데이터센터를 지나, 케냐의 지열과 튀니지의 스타트업까지 훑었다. 장면은 달랐지만, 하나의 질문이 관통했다. 전기는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이 질문은 세 가지 층위를 갖는다. 첫째, 혜택과 비용이 공평하게 나뉘고 있는가. 재생에너지는 농촌에서 생산되는데 AI의 과실은 도시에 집중되고,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몰리는데 전력 공급 병목의 대가는 지방이 치르는 구조. 호남에서 터빈이 멈추는 동안 서울의 서버는 돌아간다.
-06_“전기,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는가” 중에서
용인의 그 변전소 앞으로 돌아가 보자. 크레인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전력 수요는 내일도 늘어날 것이다. 데이터센터 옆에 태양광 패널을 세우는 일, NPU 칩으로 같은 연산을 더 적은 전력으로 수행하는 일, 제주의 남는 풍력 전기를 VPP로 묶어 전력 시장에 파는 일−이 모든 퍼즐의 조각은 이미 테이블 위에 있다. 다만 그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시장의 규칙이고 정치적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스위치를 쥐는가−10장의 질문이 여기서 시작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도체를 돌릴 전기가 어디서 올지, 아직 합의된 답이 없다. 칩은 있다. 플러그가 없다.
-09_“한국: 고립된 전력망, 반도체 강국의 선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