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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AI의 말에서 위로를 받고,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때로는 AI가 나를 이해한다고 느낀다. 이 낯선 경험은 우리에게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인간의 정서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인간의 정서가 어떻게 구성되고, 언어와 이미지 속에서 어떻게 표상되며, 사람마다 왜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그 토대 위에서 AI가 정서를 분류하고 표현하지만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서 공간을 구성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서가 얼마나 복잡하고 독특한 현상인지를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서가 ‘구성된다’는 것은 AI를 다룰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AI는 심장이 뛰지 않고, 손에 땀이 나지도 않는다. 만일 정서 경험이 순전히 자신의 신체 반응이라면, AI는 정서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AI와 정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정서가 해석 및 구성의 산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는 신체가 없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패턴을 인지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기(혹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서가 전적으로 생물학적 반응이라면 AI는 영원히 그 바깥에 머무를 것이지만, 일정한 구조와 평가 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AI는 그 구조의 일부를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01_“정서” 중에서
정서를 좌표 공간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정서를 데이터로 다룰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AI 연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AI는 기본적으로 연속적인 값을 잘 처리한다. 기계학습 모델은 확률, 평균, 분포, 벡터 공간과 같은 통계적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정서를 “기쁨” 혹은 “슬픔”처럼 하나의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보다, 긍정–부정의 정도와 각성 수준을 수치로 표현하는 방식이 기계에게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차원 모델은 정서를 이 연속적 구조에 맞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정서 간의 거리와 유사성을 계산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텍스트나 이미지 데이터가 벡터 공간 안에서 유사도로 비교되는 방식과 닮아 있다. 특정 문장이나 이미지가 어떤 정서 좌표에 가까운지,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를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
-03_“차원적 정서 모델” 중에서
AI는 뇌도 없고, 신체도 없고, 실제 정서를 경험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기반으로 계산한 정서 값이 인간의 정서 처리와 관련된 신경 네트워크와 어느 정도 대응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이것이 ChatGPT가 정서를 ‘느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정서를 분류하고 좌표화하는 수준에서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내는 정서 지도와 ChatGPT가 만들어 내는 정서 지도 사이에 일정 부분 겹치는 영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서를 경험하는 방식은 분명 다르지만 정서를 구조화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06_“인간-AI 정서 비교” 중에서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한 가지를 실감했다. 사람들은 이제 AI를 전문가의 의견을 완전히 대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전문가에게 가기 전 먼저 의견을 구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AI의 답변이 맞을 때도 있고, 전문가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결국 누군가 그 정보를 해석하고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이 경험은 임상 영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09_“임상과 정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