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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너머의 주체

발행일
2026/09/02
저자
한귀은
쪽수
131쪽
차례
자아의 제국, 망명하는 주체 01 정동, 스피노자 02 자기배려, 푸코 03 벌거벗음, 아감벤 04 문답, 소크라테스 05 그림자, 융 06 사건, 바디우 07 탈주, 들뢰즈 08 에로스, 플라톤 09 습관, 아리스토텔레스 10 환상, 라캉
정가
12000원
ISBN
9791143032201
대분류
인문·문화·예술
소분류
철학·인문학·포스트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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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분석·예측에 둘러싸인 인간이 ‘주체’라는 부담을 어떻게 내려놓고 있는지 묻는다. AI가 선택을 정리하고 감정까지 해석해 주지만, 모든 것이 설명되는데도 납득되지 않는 순간은 남는다. 배달 앱, SNS, 연애, 투자, 수면 점수 같은 일상 속에서 자아와 주체의 차이를 추적하며, 최적화되지 않는 인간의 잔여를 철학적으로 읽어낸다.
AI는 나의 코나투스를 특정한 방식으로 포획한다. 존재를 지속하려는 힘은 원래 더 큰 역량을 향해야 하는데, 오늘날 대부분 정동의 회로는 존재를 확장시키기보다 겨우 버티게 만든다. 살아 있게 만들기보다 계속 접속하게 만든다. 활동 능력을 증가시키기보다 활동 능력이 줄어든 상태를 관리 가능한 소비 상태로 바꾼다. 물론 AI 이전에도 인간은 이미 정동적으로 조정되는 존재였다. 종교, 가족, 학교, 국가, 자본, 연애, 광고, 아침 라디오, 사무실 형광등, 상사의 말투, 지하철의 밀도 등등−인간의 정동을 조직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AI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이 오래된 정동의 조정을 실시간으로, 개인별로,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수행한다는 점이다. -01_“정동, 스피노자” 중에서 아감벤(G. Agamben)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은 헐벗고 가난한 생명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인정, 제도적 보호의 두꺼운 옷이 벗겨진 채, 그저 살아 있음 자체로만 관리되고 노출되는 생명이다. 플랫폼 안에서 그는 하나의 움직이는 점, 관리 가능한 경로, 예측 가능한 노동 단위로 수집된다. 그가 피곤한지, 무서운지, 모멸감을 느끼는지, 억울한지 같은 것은 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계속 달릴 수 있는가,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는가, 평점이 유지되는가다. -03_“벌거벗음, 아감벤” 중에서 바디우는 주체가 사건에 대한 충실성 속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은 매우 가혹하다. 왜냐하면 사건은 한 번 일어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다음부터가 문제다. 이 예외를 예전의 질서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아니면 그 예외 때문에 이전의 자기 자신을 수정할 것인가. AI 시대엔 사건이 발생하기 어렵다. 예외는 데이터세트의 오류가 되고, 충격은 곧바로 패턴으로 환원되며, 낯선 만남은 취향 모델의 미세 조정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녀도 이런 식으로 분석될 수 있다. “사용자는 안정 지향적 선택을 반복하다가 특정 시점 이후 비예측적 성향의 대상을 선호하는 보상 회로를 보였다”는 식으로. AI는 사건이 가진 유일성을, 주체를 새롭게 발생시키는 그 난감한 예외성을 삭제해 버린다. -06_“사건, 바디우” 중에서 그는 아직 덕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덕 있는 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성은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완벽한 자기관리의 인간이 아니라, 자기관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초라함을 본 뒤에도 다시 살아가는 인간. AI는 말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는 생각한다. 좋은 하루라. 이 말처럼 폭력적인 말도 없다. 어떤 하루는 좋지 않아야만 진실하다. -09_“습관,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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