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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두려워하거나 찬양하는 대신,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과 책임을 묻는다. 하느님의 형상, 디지털 교회, 성례전, 영생에서 알고리즘 편향·관계·몸·취약성까지 살피며 인간의 가치를 능력이 아니라 사랑받고 책임지며 응답하는 존재라는 데서 찾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인공지능이 질병과 빈곤, 노동과 교육, 인간의 외로움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반대로 인공지능이 인류를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갖는다. 두 입장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술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기술을 구원자로 보는 것도, 파괴자로 보는 것도 기술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술신학은 이러한 양극단을 모두 경계한다. 기술은 하느님도 아니며 악마도 아니다. 기술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인지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드러내는 문화적 산물이다.
-01_“AI와 기술” 중에서
여기에서 디지털 교회론의 핵심 명제가 도출된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줄 수 있으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성경을 요약하고 교리를 성찰하며 개인에게 맞춘 조언을 생성할 수 있지만,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거나, 은혜와 회개와 예배를 경험하거나, 본문의 패턴 너머의 창조적 통찰력, 미묘한 의미를 지각할 수는 없다. 데이터를 처리할 수는 있어도 직관적으로 또 깨달음의 형태로 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다. 물론 인공지능을 단지 이성적인 것으로, 성령을 순전히 초월적인 것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디지털 과정은 인간의 성찰과 기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통찰이 교차하는 새로운 울림의 공간을 열 수도 있다. 분별의 과제는 기술이 이 공간을 하느님과의 만남을 향해 여는 순간과 도리어 그것을 닫아버릴 위험이 되는 순간을 가려내는 데 있다.
-03_“AI와 디지털 교회론” 중에서
블랙박스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끝내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앞에서 누가 응답할 것인지는 신앙 공동체가 침묵으로 넘길 수 없는 물음이다. 알고리즘이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분류하는 이 시대에, 걸음을 멈추고 응답하는 자가 되는 것, 곧 그것이 니버가 말한 신앙의 본질이며, 요나스가 촉구한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 있는 삶의 태도다. 기계는 계산할 뿐 회개하지 못하지만, 교회는 회개하고 응답할 수 있다. 그 응답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알고리즘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건넬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인 복음이 될 것이다.
-06_“AI와 책임의 윤리” 중에서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스크롤과 알림 확인 역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세속적 리터지로서, 우리의 관심을 즉각적인 자극과 소비를 향해 재편하도록 만든다. 언제나 나를 판단하지 않고 즉각 응답해 주는 대화형 인공지능과의 반복적 상호작용에도, 마찰과 인내를 요구하는 실제 이웃보다 즉각적이고 편안한 반응을 향해 우리의 사랑을 은연중에 훈련시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고 고백하든, 몸이 매일 반복하는 습관이 실제로 우리의 사랑을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의도적인 디지털 금식과 절제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현존을 깊이 자각하고, 몸으로 행하는 ‘신앙의 리터지’를 회복해야 한다.
-09_“AI와 몸의 윤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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