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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글쓰기, 이야기의 재발명

발행일
2026/10/26
저자
윤하나
쪽수
136쪽
차례
기계가 글을 쓴다, 나와 협상하며 01 에크리튀르와 떠다니는 의미 02 확률적 앵무새라는 착각 03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번역된 세계 04 인공지능의 기억과 글쓰기 05 글쓰기의 주인 06 기계의 마침표 없는 글쓰기 07 인공지능을 닮아 가는 사람들 08 글쓰기의 위기 09 공생을 위한 글쓰기 10 ‘그다음은 어떻게 돼?’
정가
12000원
ISBN
9791143034915
대분류
인문·문화·예술
소분류
문학·언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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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쓴 문장은 인간의 생각을 훔친 것인가, 새로운 창작인가? 자크 데리다의 철학으로 인간과 기계의 글쓰기를 다시 읽는다. 의미는 고정된 저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형되는 과정이다. AI를 거부하거나 맹신하는 대신, 그 제안에 반박하고 협상하며 자신의 글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창작의 조건을 탐색한다.
인공지능이 써낸 글의 불안정성이나 사실의 왜곡을 문제 삼는 것은 기표가 기의를 현전시키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을 결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적 관점에서, 재현의 정확성에 앞서 질문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써내야 하는 ‘안정된’ 글과 의미가 무엇인지, 또 인공지능이 정확하게 재현해야 하는 초월적 기의−그것이 사실이든, 진리든, 보편적 원칙이든−가 무엇으로 설정되어 있었는지 질문하는 일이다. 이러한 질문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인공지능에 대한 재현주의적 문제제기는 로고스 중심주의와 현전의 형이상학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인공지능이 ‘보여 주어야 하는’ 지식, 세계, 의미, 가치는 기능적 차원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글쓰기가 지닌 불안정성과 미완결성은 구성상의 필연적인 속성이다. -01_“에크리튀르와 떠다니는 의미” 중에서 이처럼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번역한 결과물인 데이터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데이터는 세계라는 원본을 현전시키기보다는 특정한 기호작용을 통해 재구조화한다. 기술이 제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데이터화는 언제나 세계를 번역하는 행위이지 재현하는 행위가 될 수는 없다. 원본을 포착하고 재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기호들이 복잡하고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경험을 포함한 수많은 사실들은 점점 더 정교하게 구축된 기호화의 체계로 편입될 뿐이다. -03_“알고리즘과 데이터로 번역된 세계” 중에서 이런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인공지능의 글쓰기가 상당히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계기들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글쓰기가 최종적인 의미의 종착역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기호작용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의 생산을 목도할 것이다. 만일 인공지능 글쓰기가 하나의 종착점에 도착한다면 그것은 기술 발전의 중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의미의 완결은 더 이상 기호 작용을 통해 관계의 변화나 새로운 해석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라는 글쓰기 체계가 종결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터가 누적되고 기술이 고도화되면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기능적으로 점차 정확해질 것이다. 하지만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초월적 기의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데이터와 확률에 의존하는 한, 세계를 무한히 번역하는 것일 뿐 원본을 재현하지 못한다. 대상의 버전(version)을 늘릴 수는 있지만, 대상의 존재를 총체적으로 재현할 수는 없다. -06_“기계의 마침표 없는 글쓰기” 중에서 인공지능과 자주 대화하거나 글쓰기를 요청해 본 사람이라면 인공지능이 추가로 던지는 질문에 익숙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답변을 마친 뒤 종종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때로는 매우 구체적인 후속 작업을 제안하고, 추가적인 질문이 있다면 이어서 물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제안을 하나의 실마리로 삼아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가기도 한다. 지금 인공지능을 마주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기보다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09_“공생을 위한 글쓰기” 중에서